법정에서 하루를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머릿속은 늘 소음으로 가득하다.
판사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했는지, 상대 변호사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의뢰인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일을 마치고 난 뒤에도 일이 나를 붙잡아 늘어진다.
몸은 퇴근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법정에 남아 있는 것 같달까.
그런 날이면 집에 들어가 책상에 다시 앉기 전에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두 녀석은 신나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다가 산책가자고 재촉한다.
사실 마음 한켠에는 ‘오늘도 정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을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러나 두 녀석의 눈빛은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아 결국, 신발 끈을 묶고 집을 나선다.
몇 걸음만 걷고 나면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사건 기록들이 조금씩 옅어진다.
강아지가 풀 냄새를 맡느라 멈춰 서면, 나도 그 옆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잠시 멈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배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늘 긴박하게 움직여야 한다.
제출 기한은 정해져 있고, 재판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순간의 판단 실수가 곧 결과로 이어지기에 마음은 늘 조급하다.
의뢰인은 언제나 빠른 답을 원하고, 나는 그 기대를 채워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산책길에서 강아지가 갑자기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듯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몇 초는 사건도, 서류도, 기일도 잊는다.
풀잎의 흔들림이나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잠시 집중하면서 머릿속을 조여오던 매듭이 조금씩 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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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여러 명이 함께 피해를 입은 단체소송이었다.
긴 시간 의뢰인들과 함께 자료를 모으고 논리를 세웠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상담 자리에서 그들이 흘린 눈물을 곁에서 보며, 이 일만큼은 반드시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의뢰인들이 허탈한 표정을 보이던 그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변호사로서 책임감이자, 한 인간으로서 함께 느낀 좌절이었다.
그날 밤에도 강아지들과 잠시 산책을 나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두 녀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줄을 당기며 투닥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한쪽 방향만 고집해서는 안 되는구나.
때로는 서로 다른 길이 부딪히더라도,
결국 함께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결론만 붙잡는 대신,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깨달음이 항소심에서 새로운 전략을 짜는 출발점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승소는 아니었지만, 의뢰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미 있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산책을 단순한 휴식이나 강아지들만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하나의 ‘재정비 의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은 멈추지 않으면 다시 뛸 수 없다는 사실을, 강아지들과의 발걸음 속에서 깨닫는다.
조금 가벼운 마음과 생각으로 내가 세상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두 녀석과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나는 변호사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간이 있기에 다시 변호사로서 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나는 종종 의뢰인들에게도 말한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따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정에서 아예 자유로울 수는 없죠.”
나 자신이 그렇다.
사건 앞에서 흔들리고 좌절하지만, 산책을 통해 배운 멈춤과 기다림은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시 구조를 세울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많은 긴장과 압박이 따라올 것이다.
아마 마음이 무너질 순간도 반복해서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강아지들과 걷는 산책길에서 다시 한번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잠시 멈추고 걷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변호사로 계속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작고도 단단한 힘이라는 것을.
“멈추는 법을 알 때, 다시 나아갈 힘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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