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포스트 내용은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0다247428 판결의 사실관계를 기초로 작성하였습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재산보다 빚이 많아 저는 어쩔 수 없이 한정승인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생명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남편의 생명보험금을 내연녀가 타갔네요. 생명보험금이 거의 13억 원입니다."
빚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남편
어떤 사람이 재산보다 빚이 많은 상태에서 돌아가시면, 이분의 상속인이 이 빚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모든 재산과 빚이 상속인에게 승계되니까요.
다만, 이런 경우에 상속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법은 일정 기간 동안 상속인들에게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빚을 갚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안에서도, 상속인이었던 부인은 상속한정승인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생명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니어서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생명보험금을 받을 수가 있는데요, 이 사안에서 생명보험금의 수익자가 상속인이 아니었다는 데에서 문제가 출발합니다.
생명보험금의 수익자를 내연녀로 지정한 남편
생명보험을 가입할 때, 보험금 수익자에 관한 별도의 지정이 없으면 보험수익자는 법정상속인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생명보험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이 아닌 제3자로 하여 보험 가입도 가능하고, 처음에는 법정상속인으로 지정하여 보험을 들었는데 나중에 이 수익자를 변경할 수도 있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실제 이 사안에서 남편은 생명보험금의 수익자를 제3자(내연녀)로 변경하고 사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편의 상속인인 부인은 아무런 재산도 받지 못하고, 내연녀는 생명보험금 12억 8,000만 원을 모두 수령하였죠.
당연히 부인은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은 내연녀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하였습니다. 법률적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보험금 수익자를 제3자로 변경한 부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생명보험금 전액을 상속인에게 돌려달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부인이 할 수 있었던 권리 구제 방법은 유류분반환청구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부인이 유류분 반환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유류분반환청구사건의 쟁점
1. 생명보험금이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법률적으로 봤을 때 이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입니다.
과연 생명보험금이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되는 재산인 것인가.
유류분 반환은 피상속인(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공동상속인 또는 제3자에게 재산을 '증여'하였거나 유언으로 남기는 바람에 상속인들이 재산 상속을 받지 못했을 때(또는 충분히 받지 못했을 때), 상속인들의 최소한도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가령 피상속인에게 자녀 A, B가 있고 100억 원의 재산이 있었는데, 재산 전부를 A에게만 증여하였다면, 이 증여로 다른 상속인인 B는 재산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원래는 재산의 절반인 50억 원을 분배 받을 수 있는 사람이 0원을 상속받으니 B에겐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겠죠. 그래서 법은 상속인이라면 최소한도의 재산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 최소한도의 재산은 법정상속분의 절반으로 정해두었습니다. 즉, B는 25억 원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이 유류분은 아무리 피상속인이라도 침해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B는 피상속인 사후 A를 상대로 25억 원의 반환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류분 반환 청구입니다.
이 유류분 반환 청구가 이루어지려면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를 했거나 유증을 하여 유류분 침해가 발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생명보험금을 피상속인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이 생명보험금은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와의 계약을 원인으로 발생한 돈입니다. 애초에 피상속인의 재산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죠(물론 피상속인이 자신의 재산으로 보험료를 납부했겠지만).
그래서 학계에서 그동안 이 생명보험금이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되는 '특별수익'인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례가 이것을 정리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죠.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생명보험금이 상속재산이 아니라는 점과 유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4년에 생명보험금이 특별수익에 준하여 반환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한 적도 있었고, 우리나라 서울고등법원도 2016년에 보험금 청구권은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공동상속인의 특별수익에는 해당한다고 보아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액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대법원이 생명보험금도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0다247428 판결
그러면서 대법원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증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행위의 법적 성질을 형식적, 추상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재산 처분행위가 실질적인 관점에서 피상속인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무상 처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내연녀는 악의의 수익자가 될 수 있는가?
자, 생명보험금도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그럼 이 사안에서 부인은 내연녀가 받은 생명보험금 12억 8,000만 원 중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다음 민법 규정을 보시죠.
제1114조(산입될 증여) 증여는 상속개시전의 1년간에 행한 것에 한하여 제1113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액을 산정한다.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를 한 때에는 1년전에 한 것도 같다.
피상속인으로부터 특별수익을 한 사람이 공동상속인이라면, 이 사람이 언제 재산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유류분 제도가 시행된 1979. 1. 1. 이후에 있었던 증여라면 모두 반환의 대상이 됩니다.
반면에 공동상속인 아닌 제3자(사실혼 배우자, 손자, 며느리, 사위, 동생, 교회 등)가 재산을 받았다면 원칙적으로는 상속개시 전의 1년간에 이루어진 증여만 반환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이 2022. 12. 15. 돌아가셨다면 2021. 12. 15.부터 사망일까지 1년 동안 이루어진 증여여야만 합니다.
다만, 재산을 준 피상속인과 재산을 받은 공동상속인 아닌 제3자가 이 재산을 받을 때 이 재산 증여로 다른 상속인들의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알았다면, 예외적으로 기간 제한 없이(물론 1979. 1. 1. 이후 여야 합니다) 반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침해 사실을 알면서 받은 사람을 '악의의 수익자'라고 합니다.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0다247428 판결
그렇다면, 이제는 사망한 남편이 보험금 수익자를 내연녀로 바꿀 당시에, 내연녀가 이 수익자 변경으로 상속인들의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알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내연녀가 이를 알 수 없었다면, 부인이 아무리 억울해도 내연녀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이 사안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실제 사안에서 원심(광주고등법원)은 내연녀가 악의의 수증자라고 판단하여 부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내연녀를 악의의 수증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하여 이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죠.
피상속인, 그러니까 원고의 남편은 개업의사였고, 원고를 상대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한 적도 있었습니다. 피상속인은 2017. 1. 세상을 떠났고(당세 49세), 2013. 8. 경에 생명보험금의 수익자를 피고였던 내연녀로 변경하였습니다. 위 생명보험 수익자를 변경할 당시 망인의 월수입은 약 3,750만 원 정도였고, 보험료로만 월 2,000만 원을 납입했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증여재산의 가액이 남은 재산의 가액보다 큰 것은 사실이었지만, 40대 중후반의 의사인 피상속인이 향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건강상 또는 일신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없고, 피상속인이 장래 상속개시일(사망일)까지 자신의 재산이 증가하지 않으리라는 점까지 예견하고 피고에게 증여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남편이 생명보험금 수익자를 내연녀로 변경할 당시에 큰 재산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의 남편의 직업이나 월 소득을 봤을 때 이 보험금 수익자 변경으로 부인의 유류분이 침해될 것이라는 것을 의도하거나 예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보험금의 수익자 변경은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 피상속인 사망일 이전 1년간 이루어진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하는데 그 기간은 벗어났죠. 결국 내연녀가 수령한 13억 원에 가까운 생명보험금은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3. 상속채무를 내연녀에게 전가할 수 있는가?
피상속인에게 100억 원의 재산이 있고, 상속인으로는 A, B가 있는 사안을 다시 보시죠. 사안을 조금 바꿔 피상속인이 100억 원의 재산이 있고 이 재산을 모두 A에게 준 것까지는 같은데, 피상속인에게 30억 원의 빚이 있었다고 해보겠습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는 순간 30억 원의 빚은 법정상속분대로 분할되어 상속인들이 승계하여야 합니다. 그럼 B는 아무런 재산도 받지 못하고 15억 원의 빚만 떠안아야 합니다.
이때 B는 A에게 유류분반환청구를 하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15억 원의 상속채무를 A에게 전가할 수 있습니다. 원래 유류분 부족액에 15억 원을 얹어서 반환을 받는 것입니다(이때 반환 가능한 액수는 32.5억 원입니다). 그럼 A로부터 15억 원을 받아 이 재산으로 채권자에게 갚는 것이죠.
위 대법원 판례 사안에서 부인은 남편에게 재산을 받지 못한 채 채무만 상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속채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정승인을 하였죠.
이때, 부인은 자신의 상속채무 분담 부분을 내연녀에게 전가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이 가능성 역시 부정하였습니다.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0다247428 판결
부인이 남편 사망한 후에 한정승인을 했고, 상속재산이 없어 받은 재산이 없으니 상속채무 분담액도 0원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망인의 채무를 책임질 일이 없으니 내연녀에게 상속 채무 분담액을 전가할 수도 없죠.
결국, 내연녀는 부인에게 생명보험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부인에게는 분명 안타까운 결론입니다.
상속의 관점에서 보면, 이 대법원 판례는 보험금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이 아니라 공동상속인 중 일부 또는 제3자로 지정되어 있을 때 생명보험금도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생명보험금의 수익자로 지정된 때를 증여의 시점을 본다는 점, 그리고 보험금 수익자가 공동상속인 아닌 제3자일 때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아주 큰 판례입니다.
앞으로는 이 생명보험금이 상속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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