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거대한 도시개발사업이 부정하게 이루어졌다' 는 감사원 처분 > 형사 수사 및 공무원 징계 > 민사소송 청구의 일련의 과정에 모두 변호인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문제가 된 개발은 신도시 도시개발사업이었는데, 아주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얽혀 있었지요. 그 중 메인이 된 것은 1) 도시공사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 2) (가장 이득을 많이 본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개발에 참여한 시행사업자였습니다. 처음 감사원 조사는 괜찮은 변호인 없이 절차만 따라가셔서, 다소 부적법하고 부정확하게 흘러갔고, 저희 팀이 주로 주력을 다 한 것은 형사 수사 절차였습니다.
제가 당시 모시던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님, 선후배 변호사님과 팀을 이뤄 하루 종일 법리와 사실관계를 토론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의뢰인 분들이 '오해 받지 않고' '실수한 부분만' 책임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의뢰인들의 억울한 사정(도시공사 직원들은 절차에 맞게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였고, 위 과정해서 시행사업자가 반사적 이익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고의'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을 잘 설명드려서, 아주 어렵게 의뢰인들의 무혐의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공사로부터 의뢰인들에 대한 각 10억씩의 민사 청구가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원고는 손해액은 추후 확장청구하겠다는 취지까지 밝히셨지요. 일반 상식인 분들이 보기에는 이상하지요? 형사 무혐의가 나왔는데 민사 청구도 들어왔다니요! 그러나 이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감사원 조치사항에는 민/형/행상의 조치요구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수사기관에 수사의뢰(형사)는 감사원이 직접 합니다. 그리고 기관에는 해당 직원(공무원)을 징계하라 하고, 직원의 고의 과실로 입은 손해를 회수하라 합니다. 기관은 감사원의 조치사항을 따르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형사법은 과실에 의한 죄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법문에서 따로 정한 과실치상 정도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민사법은 과실로 상대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해당 손해를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유명한 조항인 민법 제750조만 보더라도,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지요). 따라서 형사적으로 무혐의라도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원 조치에 따른 형사수사결과가 무혐의가 나오는 경우, 민사 손해배상도 기각되는 경우가 통상적입니다. 결국 민사청구도 전부 기각시키고, 해당 사건은 완전히 성공으로 결론 났지요.
최근에 감사원 조치, 형사 수사를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하시고, 민사 소송을 저희에게 맡겨주신 의뢰인이 계셔, 고생했던 옛 생각이 났습니다. 다만 위 의뢰인께서는 대부분 범죄사실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으셨는데, 이 부분에서 제가 수행했던 사건과는 변론의 방향과 난도가 크게 차이 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적으로 죄가 있는 것과 민사상 손해배상은 또 다른 말입니다. 죄가 성립하더라도, 상대방이 손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면 손해배상청구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번 주는 형사기록 수십권을 읽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어떻게든 의뢰인께서 '자신이 상대에 손해 입힌 부분만'을 배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변호사 초년차 때는 수십 억, 수백 억 자산가인 회장님들의 사건을 변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허무해 할 때도 사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은 꽤 바뀌었습니다. 맡은 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 의뢰인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처벌 받고, 손해를 배상하는 것, 다만 의뢰인이 하지 않은 부분까지 억울하게 처벌받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람이 있습니다. 잘잘못과 진실을 따져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 사람을 돕는 것에 행복과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비결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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