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의료 소송은 일반적인 민사 분쟁과는 달리 의학이라는 매우 전문적인 과학적 영역과 규범적인 법률적 판단이 결합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대부분 의료 소송에서는 진료기록 감정 절차가 진행되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진료기록 감정 절차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2. 진료기록 감정의 의의
의료 소송에서 진료기록 감정이란 법원의 촉탁(부탁)을 받은 제3의 의사가 의료사고가 발생한 병원의 진료기록부를 검토하여 의료 행위의 적절성, 의료 과실의 유무, 의료 과실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하여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의료 소송에서 진료기록 감정이 가지는 대표적인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전문성 보완 및 판단의 기초 제공
재판부는 법률 전문가이지 의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 행위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실이 환자의 악결과(사망, 후유 장해 등)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진료기록 감정은 이러한 법관의 판단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전문가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의견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증거 조사 방법입니다.
나. 정보의 비대칭성 완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 행위의 밀실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직접 입증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진료기록 감정은 객관적인 진료기록을 토대로 제3의 전문가가 분석함으로써 환자 측의 입증 부담을 덜어주고 양 당사자 간의 정보 불균형을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 진료기록부의 중요성 강조
감정은 철저히 진료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의료법상 의사에게 부과된 진료기록부 작성 의무가 소송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만약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이 부실하거나 허위로 기재된 경우 법원은 해당 의료기관에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3. 진료기록 감정의 절차
진료기록 감정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됩니다.
가. 감정 신청
주로 원고(환자 측)가 법원에 진료기록 감정을 신청합니다. 이때 감정을 통해 원고가 밝히고자 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감정 사항'을 제출합니다.
나. 감정인 지정 및 감정 촉탁
법원은 진료기록 감정을 수행할 공신력 있는 기관(주로 대학병원, 대한의사협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을 감정의로 지정하고, 해당 기관에 감정을 촉탁(부탁) 합니다.
다. 감정서 회신
감정의는 법원으로부터 받은 진료기록과 감정 사항을 토대로 진료기록을 검토하고 감정 사항에 대한 답변을 기재한 '진료기록 감정 회신서' 를 법원에 제출합니다.
그런데 감정 촉탁은 법원의 명령이 아닌 '부탁'의 성격을 가집니다. 따라서 감정기관은 내부 사정(예: 과도한 업무량, 해외 학회, 이해관계 충돌 등)을 이유로 감정을 반려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반려되면 법원은 다른 감정기관을 다시 물색하여 촉탁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정기관의 선정, 촉탁, 반려, 재선정 과정이 반복되면 소송 절차가 계속 지연되기에 의료소송이 장기화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 또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감정을 반려하지 않기에 소송이 지연되는 경우에는 위 기관으로 감정을 촉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라. 감정 결과에 대한 보완 및 재감정
감정 결과가 의학적으로 불명확하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당사자는 '사실조회'를 통해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거나 '보완 감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감정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경우 아예 처음부터 다시 감정을 원한다는 취지로 다른 감정기관에 재감정을 신청할 수도 있으나 법원은 소송 지연 등을 이유로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4. 진료기록 감정의 효과 및 법원의 판단
가. 강력한 증거로서의 효력
진료기록 감정 결과는 의료 과실 및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됩니다. 법원은 감정 결과에 기속되지는 않지만, 그 전문성을 존중하여 판결의 핵심적인 근거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법원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감정 결과를 다른 증거(당사자 진술, 진료기록부 자체의 기재 내용 등)와 종합하여 합리성을 판단하지만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그 방법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존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감정 결과가 진료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와 명백히 배치되거나, 논리적 모순이 있거나 전제된 사실관계가 잘못된 경우에는 이를 배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료기록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성 의견이나 감정의가 법관의 판단 영역인 '과실 유무'를 단정하는 부분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 복수의 감정 결과가 상충하는 경우
재감정 등으로 인해 서로 다른 감정 결과가 제출된 경우 법원은 각 감정의의 전문성, 감정의 근거, 논리의 명확성 등을 비교 검토하여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5. 결론
진료기록 감정은 의료 소송에서 법관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의료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데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감정 결과는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법원은 이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자유심증에 따라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내립니다.
다만, 감정 촉탁이 반려되거나 회신이 늦어지는 경우 소송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실무상의 어려움이 존재하며 이는 신속한 권리 구제를 원하는 당사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송 당사자는 감정 절차의 중요성과 한계를 모두 이해하고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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