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인 A가 있었습니다. 가해자 B는 A에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합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심 선고 직전, B는 갑자기 수천만 원을 공탁하였고 재판부로부터 감형을 받았습니다.
B는 너무 억울해했습니다.
이런 게 정의일까요?
피해자의 고통은 그대로인데, 가해자는 돈만 공탁하고 형량을 줄이는 "기습공탁"이라는 편법을 썼던 겁니다.
그리고 이 공탁금, 나중엔 몰래 회수까지 해 가는 "먹튀공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이런 뉴스를 접하셨을 겁니다.
"성폭력 가해자, 재판 직전 공탁금 내고 감형 받아",
...
"피해자 모르게 공탁했다가 나중에 도로 찾아가"...
이런 기사들은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습니다.
이처럼 형사공탁 제도가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자, 법무부는 2024년 공탁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에 나섰고, 드디어 2025년 1월 17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이 개정 내용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실제 사건과 함께 차근히 풀어보겠습니다.
서론 : 기습공탁의 민낯과 법 개정의 진정한 의미
1. 기습공탁의 문제점 – "판결 직전 돈 던지고 감형 받는 꼼수"
기습공탁은 말 그대로 '몰래', '갑작스레' 하는 공탁입니다.
가해자가 재판 선고를 눈앞에 두고 피해자와는 그 어떠한 교감도 없이, 일방적으로 돈을 법원에 공탁하면서 "나는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식의 주장으로 감형을 노리는 행위입니다.
한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30대 남성 C는 전 여자친구 D를 상대로 스토킹과 협박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D는 수차례 법정에서 C의 엄벌을 요청했고, 어떤 합의나 접촉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선고 하루 전날, C는 피해자D 모르게 1,500만 원을 공탁했고, 재판부는 이를 참작해 당초 예상했던 형량보다 6개월이나 감형된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해자 D는 판결문을 받고서야 C의 공탁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극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202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바리캉 폭행남 사건'을 보시죠.
이 사건은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오피스텔에 4박 5일간 감금한 뒤, 수차례 폭행·강간하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삭발하는 등 엽기적 행각을 벌인 20대 남성의 범행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인 남자친구는 피해자에게 어떤 사과나 합의 없이 선고 이틀을 남겨두고 1억 5,000만 원을 기습 공탁했습니다. 피해자는 재판부에 공탁금회수 동의서를 제출하는 등 엄벌을 탄원하였으나 재판부는 공탁한 점을 반영하여 검사의 10년 구형에도 불구 7년형을 선고하였고, 항소심에서는 이마저도 3년으로 또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피해자는 엄청난 상실감과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습공탁은 피해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심지어 공탁 사실조차 모른 채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소외되는 사법절차"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2. 형사공탁의 의의 – "피해자 회복과 반성의 기회였지만..."
형사공탁은 원래 취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형사공탁이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라도 법원에 일정 금액을 공탁해 두면, 피해자가 추후 수령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입니다(공탁법 제5조의2).
[공탁법]
제5조의2(형사공탁의 특례)
①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하여 하는 변제공탁(이하 “형사공탁”이라 한다)은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할 수 있다.
② 형사공탁의 공탁서에는 공탁물의 수령인(이하 이 조에서 “피공탁자”라 한다)의 인적사항을 대신하여 해당 형사사건의 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이하 이 조에서 “법원”이라 한다)과 사건번호, 사건명, 조서, 진술서,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하고, 공탁원인사실을 피해 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재할 수 있다.
③ 피공탁자에 대한 공탁통지는 공탁관이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고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다.
1. 공탁신청 연월일, 공탁소, 공탁번호, 공탁물, 공탁근거 법령조항
2. 공탁물 수령ㆍ회수와 관련된 사항
3. 그 밖에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사항
④ 공탁물 수령을 위한 피공탁자 동일인 확인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이 기재된 법원이나 검찰이 발급한 증명서에 의한다.
1. 사건번호
2. 공탁소, 공탁번호, 공탁물
3. 피공탁자의 성명ㆍ주민등록번호
4. 그 밖에 동일인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⑤ 형사공탁의 공탁서 기재사항, 첨부하여야 할 서면, 공탁신청, 공탁공고 및 공탁물 수령ㆍ회수 절차 등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20. 12. 8.]
형사공탁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피해자 회복입니다. 피고인이 직접 합의하지 못할 경우에도 피해 회복을 위한 금전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죠.
둘째, 양형자료로서의 가치입니다.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정황으로 감형 사유에 포함됩니다.
셋째, 형사정책적 기능입니다. 범죄 예방 및 피해 회복을 위한 입법 형성의 수단이 됩니다.
제가 변호했던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서는 형사공탁이 본래 취지대로 작용한 좋은 예가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일용직 노동자로 한 번에 큰 합의금을 마련할 수 없었지만, 진심으로 반성하며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서 공탁소에 돈을 공탁하였습니다.
피해자 유족들도 피고인을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이런 진정성을 인정했고, 결국 합의에 이르러 피고인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공탁제도는 진정한 반성과 피해 회복을 위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경우 이 제도가 피고인의 일방적인 전략 도구로 전락했다는 데 있습니다.
합의는커녕 반성도 없는 가해자가 공탁 하나로 감형을 유도하고, 피해자는 재판이 끝나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는 현실.
이게 과연 정의로운 형사사법 시스템일까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탁의 진정성이 없는 경우는 대부분 판결 직전에 급하게 이루어진다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피해자와 어떤 소통도 없이 말이죠.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이번 법 개정의 핵심 목표였습니다.
3. 개정된 형사소송법·공탁법 소개 – "기습공탁, 먹튀공탁 이제 막는다"
2025년 1월 17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과 공탁법은, 이러한 기습공탁과 먹튀공탁의 허점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1) 형사소송법 개정 – 피해자 의견 청취 의무화
신설된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판결 선고 전 공탁이 있는 경우, 법원은 반드시 피해자(또는 유족)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피해자 사망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금전 공탁과 피해자 등의 의견 청취)
①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필요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에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를 포함한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그 의견을 청취하기 곤란한 경우로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에 따른 의견 청취의 방법ㆍ절차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24. 10. 16.]
[형사소송규칙]
제134조의13(금전 공탁에 대한 피해자등의 의견 청취)
① 법원이 법 제294조의5제1항 본문에 따라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피해자등’이라 한다)의 의견을 듣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한다.
1. 검사 또는 피해자 변호사에게 의견조회서를 교부 또는 송부하여 그로부터 해당 의견조회서를 제출받는 방법
2. 서면ㆍ전화ㆍ전자우편ㆍ모사전송ㆍ휴대전화 문자전송 그 밖에 적당한 방법으로 피해자등의 의견을 확인하는 방법. 이 경우 법원사무관등은 의견 확인의 상대방ㆍ방법ㆍ연월일 및 피해자등이 제출한 의견(피해자등이 의견제출을 거절하는 등의 경우에는 그러한 취지)을 기재한 서면을 기록에 편철하여야 한다. 다만, 조서에 그 내용을 기재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법 제294조의5제1항 단서에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1. 피해자등이 이미 해당 사건에서 피고인의 공탁에 관하여 의사를 진술하여 다시 그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경우
2. 피해자등의 의견 청취로 인하여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3. 피공탁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등의 사유로 피해자등의 의견을 듣기 곤란한 경우
4. 그 밖에 심리나 절차 진행의 상황 등에 비추어 피해자등의 의견을 듣기 곤란한 경우
③ 법 제294조의5에 따라 피해자등이 제출한 의견은 범죄사실의 인정을 위한 증거로 할 수 없다.
[본조신설 2024. 12. 31.]
즉, 이제는 가해자가 선고 직전에 공탁을 해도, 그게 감형 사유로 작용하려면 반드시 피해자의 입장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물론 단서를 통해 그 의견을 청취하기 곤란한 경우 혹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기는 했습니다.)
피해자는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다", "진정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제가 최근 대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개정법의 효과를 미리 볼 수 있었습니다. 재판부가 선제적으로 피고인 측의 공탁에 대해 피해자의 의견을 물었고, 피해자가 "진정한 사과 없는 공탁은 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자 재판부도 이를 존중해 공탁금을 감형 요소로 크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공탁은 단순한 '감형용 돈'이 아니라 진정한 반성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2) 공탁법 개정 – 공탁금 회수 원칙적 제한
'먹튀공탁'이라고 불리는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개정된 공탁법 제9조의2는 형사공탁금 회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회수를 허용합니다.
[공탁법]
제9조의2(공탁물 회수의 제한)
① 공탁자가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하여 변제공탁을 한 경우에는 제9조제2항제1호 및 제3호의 사유로는 공탁물을 회수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공탁물을 회수할 수 있다.
1. 공탁물의 수령인으로 지정된 자가 공탁물의 회수에 동의하거나 공탁물의 수령을 거절하는 의사를 공탁소에 통고한 경우
2. 공탁의 원인이 된 해당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불기소 결정(기소유예는 제외한다)이 있는 경우
② 제1항에 따른 공탁물 회수 및 회수 동의의 방법ㆍ절차, 수령 거절의사의 통고 방법ㆍ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24. 10. 16.]
즉, 이제는 감형을 받은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공탁금을 다시 찾아가는 꼼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4. 어떻게 반영되는지 – 피해자 권리 회복부터 사법 신뢰 제고까지
이번 개정은 단순히 제도 손질이 아닙니다. 형사절차 전체의 신뢰 회복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1) 피해자 권리의 실질적 강화
피해자는 이제 재판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됩니다. 공탁금 수령 여부를 통해 자신의 처벌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사가 양형에 직접 반영됩니다. 피해자가 "공탁금은 받지 않겠다.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제출하면, 그 공탁은 단순한 반성의 표시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2) 범죄 예방 기능 강화
감형을 노리고 억지 공탁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범죄자의 반성 여부를 진정성 있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습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도 "공탁만 하면 형량이 준다"는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형사공탁의 본래 취지인 피해 회복에 더 충실한 방식으로 제도가 운용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법 개정은 단순한 '형식적 공탁'으로는 더 이상 감형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 기억하세요!
형사공탁금, 이제는 피해자 의견이 없으면 양형 반영 안 됩니다.
공탁금 이제 마음대로 회수 못 합니다.
피해자도 이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결론 : 형사공탁, 진정한 반성의 수단으로 돌아가다
형사공탁은 피해자 회복과 반성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기습공탁, 먹튀공탁과 같은 악용 사례는 이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공탁법은 이러한 악용을 방지하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건강한 형사사법절차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제 형사공탁은 단순한 전략적 수단이 아닌, 진심 어린 반성의 표현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피해자는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해자가 공탁했다고요? 나는 그 돈 받을 생각 없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간 법과 절차라는 이름 아래, 정작 당사자인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현실이 너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이번 개정은 그런 왜곡된 관행에 제동을 거는 소중한 진전입니다.
피해자분들이 이러한 제도를 알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을 갖추는 것, 그 출발점이 바로 이번 기습공탁, 먹튀공탁 근절을 위한 형사공탁 제도 개정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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